전도서
저자는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알고 싶었다. 그는 우선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돈은 기대했던 것만큼 인생의 의미를 가져다 주지 못했다. 그래서 다음으로 권력을 추구해 마침내 손아귀에 넣었지만 역시 만족감을 주지는 못했다. 뒤이어 쾌락과 명예, 명성도 추구해 보았다. 마침내 모든 노력을 헛되이 버린 그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다른 버전으로는 모든 것이 바람 좇음 같도다.

우리는 바람을 좇으라고 창조된 것이 아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라고 지음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주 어디선가에서 훌륭한 경배음악이나 감상하면서 유유히 거닐고 계신다고 상상한다. 하지만 성경은 전혀 다르게 설명한다. 하나님은 365, 세계 모든 곳에서 일하고 계시며,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파괴된 땅을 회복하고 재건하는 데 힘쓸 있도록 은혜와 힘을 불어 넣어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작업장갑을 두르고 계신 셈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소매를 걷어붙이고 재능과 , 시간과 정열을 다해 그분 일에 동참하라고 부르신다. 그분의 미션이 바로 우리 자신의 미션이 되길 고대하시는 것이다.만약 너희가 계속 바람만 좇을 양이면, 계속 바람을 좇으려무나, 하지만 원한다면 나와 한마음이 되어 상처받은 땅을 변화시키도록 하자라고 말씀하신다.

만약 당신이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몸을 눕혔을 때,! 내가 오늘 대체 무슨 일을 해낸 거야? 바로 하나님과 팀웍을 이뤄 세상을 변화시켰다고!라고 외칠 있다면 기분이 얼마나 짜릿하겠는가? 지금 앉아 있는 멋진 관람석에서 일어나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관람석을 넘어 경기장으로 뛰어들 시간이 되지 않았는가? 장담할 있는 것은, 관람자에서 참여자로 변하는 바로 그 순간 당신은 훨씬 짜릿한 흥분을 맛보게 것이다. 남들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는데 당신은 동참의 기회를 그냥 놓치겠는가? , 이제 당신 차례가 왔다.

 

-「섬김의 혁명시리즈(2) / 빌 하이벨스(윌로우크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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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성직자라니요

 

초대교회는 ‘모든 성도가 제사장이라는 아름다운 구도로 시작되어 모든 성도가 전방위 사역을 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난 몇 백 년 동안 교회는 다시 구약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버린 듯하다. 이를 묘사하면 다음과 같다.

수백 명의 회중이 모여 교회가 된다. 그 다음 목사를 고용한다.’ 그 다음 목사에게 “우리는 목사님이 이런 일들을 해 주기 바랍니다. 설교하고, 가르치고, 결혼식 주례 서고, 장례식 집례하고, 병원 방문하고, 심방하십시오! 그리고 시험에 든 자들은 상담해 주고, 이웃에 전도하시고, 헌금도 많이 거두십시오. 주보도 만들고, 게시판도 만들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도 해 주십시오. 그런 다음 1년 계약기간이 지나 목사님의 성과를 평가했을 때, 만족스러운 수준이면 계약을 연장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목사님을 고용할 것입니다.”라는 식이다.

이렇게 ‘고용된’ 목사가 팔방미인 역할을 정열적으로 잘 해내 교회가 성장하면, 회중은 부목사, 행정목사, 청년부 목사를 고용해서 담임 목사가 미처 다 하지 못하는 부분을 맡긴다. 이들 역시 회중이 고용한 목사로서 사역을 감당해 낼 것이다.

그 결과 평신도들이 낸 십일조와 각종 헌금으로 사례비를 받는 전문 목회자들이 업무 과중에 시달리며 문어발식 목회를 하는 동안, 평신도들은 자신의 재능과 기회를 푹푹 썩히면서 그저 힘들게 일하는 목회자를 그저 바라만 보고 구경꾼의 자리에 지루하게 머물러 있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목사님이나 성직자이지 우리는 아니다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성경의 답은 다르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모두 성직자다.’ 성도들이 마치 소비자의 마음가짐으로 교회에 와서 그냥 즐기고 가버리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하나님의 가슴은 무너질 것이다.

 

-「섬김의 혁명」 / 빌 하이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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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곳

 

의사결정에 하나됨이 있으려면, 모든 관계된 사람들이 서로 올바른 관계 위에 있어야 합니다. 성격상의 갈등이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왜 가지 않는지 변명을 할지 모르지만 성령님께서는 믿는 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 같은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성격적 차이는 받아들이지만 갈등은 아닙니다.

서로를 피하고 그 사람에게 가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무시함으로써 이러한자연적 갈등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유혹적입니다. 우리는 종종 갈등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을 탓하며 먼저 찾아가서 관계를 바로잡아야 할 책임을 회피해 버립니다. 그러나 갈등은 원래 두 사람 모두에게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갈등이 있다는 사실은 영적인 성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의 성격 가운데의 연약한 부분을 처리해서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책임을 받아들이고 서로의 차이점을 해결해 나간다면 우리는 갈등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관계 안에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하나됨으로 우리 단체를 인도하시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나의 아버지는 늘네가 고양이 두 마리를 가지고 꼬리를 같이 묶어서 한 빨랫줄에다 널어놓는다고 할 때, 결합은 될지 모르지만 하나됨은 없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됨이란 단지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있게 되었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됨은 성령이 하시는 일이며,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서 이 일을 하시도록 초청해야만 합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 사랑하기」 / 플로이드 맥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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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한 사랑

 

진정한 사랑은 다른 사람의 최선을 원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부드럽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강인하기도 합니다. 확신에 있어서는 강인하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부드럽습니다. 그것은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들과 섞이고,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과 마주하며 우리를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맞서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에 빠져 들어가는 자들을 온유하게 징계하고 그리스도 안의 동료, 형제, 자매들 사이에 있어 더 높은 수준의 책임감을 기대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교회'라는 단어는 우리가 서로의 삶에 참여하고 서로 간의 태도와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을 때 그 의미를 상실합니다. 강인함과 온유함 사이의 올바른 균형을 발견하기가 어렵지만 우리는 종종 어렵게나마 그 교훈을 터득하게 됩니다.

교회는 자신들이 공격하는 사람들을 향해 잔인하게 말하거나 사랑 없이 말하는 선지자들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회개하도록 부른 구약의 선지자들은 자주 자신들이 대결하고 있는 죄에 대해 울면서 통회하는 마음과 겸손의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경고를 주라고 자신을 보낸 사람들 위에다 자신을 올려놓고 그들을 겨냥해 비판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을 그들과 공공연히 동일시하였습니다. 우리는 깨어진 마음을 가진 선지자들-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의 교회를 서로 간의 사랑과 거룩함으로 불러낼 남자와 여자들을 필요로 합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 사랑하기」 / 플로이드 맥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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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불가능해 보일 때

 

1968년 러시아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기 직전에 프라하(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의 교외에 있는 한 교회 안에 분열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양 무리들만 이리저리 흩어졌습니다. 장로들은 자신들로 인해 엄청난 결과가 빚어졌음을 깨닫게 되자,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했지만 서로에게 다가가기에는 너무 교만했습니다.

얼마 동안 기도를 해 오던 한 장로가 솔선해서 다른 사람에게 찾아가서 자기가 잘못했다고 인정했습니다. 통회하는 마음이 그 교회의 서로 다른 파벌들에 전해져서 마침내는 하나됨과 교제가 회복되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몇 주 후에 러시아 군대가 이 나라에 침공해 왔습니다. 새 정부는 교회를 심하게 탄압했기 때문에 종교의 자유는 별안간 종말을 고했습니다.

곧 이 다섯 장로가 모두 체포되었습니다. 당국에서는 종교에 관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되었을 때 이들을 공개적인 표본으로 삼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비밀경찰의 한 고위층이 그들을 심문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서로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하면서, 그들을 격리시키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일은 그 고위 간부가 기대한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매번 이들을 이간시키려고 과거에 대한 반쪽 진리와 비꼬는 말을 할 때마다 장로들은 그저나는 내 형제가 나에 대해 그런 말을 했으리라고 믿지 않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난 그를 용서할 것이오!”라고만 말했습니다.

마침내 심문관은 범상치 않은 반응에 화가 치밀어서 그 다섯 명을 모두 자기 사무실에 불러다 놓고 왜 서로를 그렇게 사랑하는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잠시 후, 그 간부 역시 무릎을 꿇고, 똑같이 사랑으로 자신을 채워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 사랑하기」 / 플로이드 맥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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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됨을 위한 용서

 

많은 사람들은 자기 주변의 사람들이 완벽하게 되기를 기다리는 데 반해 다른 사람들은 완벽한 교회를 찾아 다닙니다. 타락한 세상에서의 하나됨이란 악이나 죄가 절대적으로 없는 것을 의미하거나 교리적으로 절대 순결함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됨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죄를 범하거나 악을 행할 때에 그들을 향해 그리스도와 같은 태도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들을 용서하고,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용납하고 우리와 의견이 불일치하는 사람을 더 낫게 여기고,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우리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순복하고, 우리를 지도하는 사람들을 신뢰하고,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찾아가고, 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에 대하여 오래 참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에 대해서와, 사랑과 하나됨을 방해하는 우리의 죄에 대한 깊은 계시를 보여 달라고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감정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됨은 우리 삶이 하나님 앞에서 통회하고 자복하는 마음의 태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과 삶의 심판관이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판단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 통회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완악하고 비판적이 될 때 우리는 하나되는 것에 대한 열심을 잃어버립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왜 잘못되었고 죄를 지었는지에 대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들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가를 먼저 알고 싶어 해야 합니다. 교제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불가능한 조건들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우기겠습니까? 아니면 즉각적이고 유쾌한 용서로 반응하시겠습니까?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 사랑하기」 / 플로이드 맥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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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됨-행동으로 나타나는 사랑

 

사랑과 하나됨이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관련된 모든 관계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믿음의 동역자들과 하나되어 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 사랑이 최우선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서로 차이점이 있는 곳에서 사랑으로 우리의 형제들에게 다가가야 하고, 성령께서 양쪽 모두에게 죄에 대한 깨달음을 주시도록 해야만 합니다. 성령님만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의 동기를 아시기 때문에 결국 그분만이 이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됨은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무엇 때문에 가능치 않은 것을 위해 기도했겠습니까? 예수님은 정치적, 사회적, 연령적 차이는 물론, 우리가 뒤에 숨겨둔 문화적, 인종적 벽에도 불구하고 하나되도록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17:20-21, 23). 관계의 불화, 개인의 독립심, 권리를 요구하는 것, 교회 논쟁에 가담하거나 주도하는 것, 교회 분열에 참여하는 것 등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7장에서 하신 기도와 정반대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분열이 있을 때마다 누가 옳은가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분열에 가담한 어느 쪽도 옳지 않습니다. 누가 옳으냐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를 갈라 놓는 쟁점이 중요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우선순위에는 그보다 높은 것이 있는데, 곧 하나됨입니다.

하나됨은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하나됨을 위한 기도에 내포된 것은 우리가 그분을 기쁘시게 하려면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빠져나갈 구멍이 없습니다. 더 이상 변명도 합리화도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했다면, 우리 식이 아닌 그 분이 요구하시는 대로 따라야만 합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 사랑하기」 / 플로이드 맥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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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사랑에 대해 지나치게 영적이 되어서 그것이 진정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지 못하게 되기가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6:32-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친구나 가족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보답으로 사랑하거나 어떤 사람이 나에게 베푼 호의에 대해 보답한다면 그것이 어쨌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의 마음 가운데 있든지 없든지 누구든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만일 그 수준에서만 사랑한다면 어떤 큰 보상도 기대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6장에서 참된 사랑은 그것이 희생적이거나, 우리의 타락한 성품의 껍질을 깎아내지 않으면 시작도 안 된 것이라고 명백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이용하고 모욕하는 자들을 축복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역설적인 것은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이나, 상대하기 가장 어려운 그리스도인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사용하시는 도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통하여 세상에게 초인간적인 사랑을 보여주기 원하시는 어떤 분을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를 예수의 제자로 알리는 것은 평범을 넘어 비범한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생활방식에 복음을 적용하여 그 사람들이 우리를 대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을 대하는 것을 거부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 사랑하기」 / 플로이드 맥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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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우리의 공통기반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인생의 가장 큰 도전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통 이상의 동기와 우리들 자신 외부에서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에게 있어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가장 큰 동기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잘 대하려고 고투하고 있을 때는 많은 일들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아야 했던 죄인이라는 사실 앞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범한 죄를 용서할 수 없다면 아마도 우리가 얼마만큼이나 용서를 받았어야 했는가를 잊어버린 것이겠지요.

우리가 흔히통회하는 마음이라고 부르는 이 상태에서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원천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서로를 위한 사랑이 우리의 공통기반이 되어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의 죄와 우리 자신이 용서를 받을 필요는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조금 가벼운 죄인은 이쪽으로, 죄가 더 무거운 죄인들은 저쪽 편으로 넣거나 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단을 만들어 놓으시고 몇몇 사람은 더 예수님께 가까이 있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단 하나의 공통적인 특징, 곧 죄성을 다 지니고 있습니다.

약간의 겸손이 결코 손해를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긴 하지만, 서로를 사랑하게 하고, 하나됨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은 죄인이라는 우리 모두의 공통적인 특징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용서를 받았고 용납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고 용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 사랑하기」 / 플로이드 맥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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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능력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은 프로그램이나 선의의 목적들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세계선교라는 대의를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5:8)”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대적하던 때까지도 우리를 사랑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용납을 확증하셨습니다. 이기적인 삶을 회개하고, 그 분께로 돌아설 수 있는 동기와 힘을 주는 것이 바로 용납하는 사랑이며, 우리가 실패할 때에 우리를 돌보시고, 다 이해한다고 안심시켜 주는 것도 용납하는 사랑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능력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절망해 가는 나라에 소망을 주고, 서로 이를 갈던 앙숙들을 뭉치게 하고, 멀어졌던 친구들을 가깝게 하고, 분열된 교회를 하나되게 하고, 타락한 그리스도인들을 새롭게 하여 우리 모두에게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를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완악한 범죄자들의 마음도 정복하시고, 이기적인 쾌락주의자의 생활 방식을 바꾸시기도 하며, 광적인 테러분자들도 온전하게 하시고, 부모님의 학대로 생긴 어린아이의 상처도 치유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그런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입니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사랑의 행위는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마땅히 받을 수밖에 없었던 형벌에 대한 대속물로 십자가에 죽게 하시기 위해 보내셨던 순간에 일어났습니다 (요일 4:9-10).

 

-「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 사랑하기」 / 플로이드 맥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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